다시 4학년, 아마도 계속 - Tue, Mar 3, 2026
모교 졸업생 재상봉 행사 기념으로 발간되는 문집에 기고한 글
1년 앞이 안 보였던 대학 4학년 때였다. 군대를 늦게 가서 4학년으로 복학했기에 새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는 살아 있었다. 그럼에도 낮은 학점을 취업 원서를 내기 전까지 메울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다. 요즘도 가끔 그 시절로 돌아간 꿈을 꾸고 나면 ‘내 마음이 불안하구나’ 하고 해석을 한다.
그때 상경대의 천재 교수님께서 개설하신 ‘중급경영통계학’을 수강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 복사실에서 5,000원에 받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책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50년 후를 예측한 ‘The Next Fifty Years’였다.
1년 앞도 모르는 내 미래에 도움이 될까 싶어 책을 펼쳤다. 하지만 몇 장 만에 포기했다. 영어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왜 이렇게 영어를 못할까’, 자괴감이 들었다. 교양영어 교재의 첫 장인 ‘The show must go on’ 에세이도 다 외우지 않았던 1학년 시절에 대한 후회도 밀려왔다.
다행히 이 책은 ‘앞으로 50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번역서를 사서 몇 장을 읽는 순간 후회를 거둘 수 있었다. 한글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영어보다는 상식이었다. 상식은 앞으로 채워가면 되니, 과거를 탓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 편한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교수님께서 강력추천하신 책인데 내 미래에 영감을 줄 만한 문장 하나라도 건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목차에서 그나마 상식이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글을 찾았다. ‘제이런 래니어(Jaron Lanier)‘가 쓴 ‘복잡성의 절정(The Complexity Ceiling)‘이라는 장을 발견했다.
그 글의 서론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해져가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를 고정적인 통신 규약(프로토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저자는 인류가 맞이할지도 모를, 하지만 피하고 싶었던 미래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310페이지) 컴퓨터 과학의 다음 50년에도 잠재력의 과장과 비용의 과소 평가라는 이 두 경향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인류가 주로 매우 덩치 큰 소프트웨어 체계를 유지하는 일에 종사하게 된다는, 즉 지구가 ‘서비스 센터 행성’ 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전혀 매력이 없는 미래상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고용을 계속 보장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활기 없는 미래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며,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할 컴퓨터 과학의 새 단계를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미래의 컴퓨터는 ‘통계적 표면 결합(statistical surface binding)‘으로 연결될 것임을 저자는 예언했다. 구성 요소들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대신, 서로를 추측하며 맞춰가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316페이지) 이런 체제를 ‘통계적 표면 결합’ 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것이 신체 장기 시뮬레이션에 쓰일 수 있다면, 범용 컴퓨터 설계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미래에는 요소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해석하고 예측까지 하는 운영 체제가 나올 것이다. 그런 체제는 파국적인 고장을 덜 일으킬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틀이 얼마나 잘 작동할지 알 방법이 없지만, 컴퓨터 구조가 우리가 현재 다루는 법을 알고 있는 규모를 훨씬 넘어서 성장한다면, 어떤 유형의 통계적 결합이 채택될 것이 당연하다.
당시 나는 이 결론에 공감하지 못했다. ‘통계적’이라는 말은 불확실성을 동반하기에 실패를 최대한 예방해야 할 컴퓨터 간의 연결에는 그런 방식이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확정적이고 명확한 규칙이 소프트웨어의 위험을 막아줄 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그래서 저자가 내놓은 해결책보다, 오히려 그가 부정적으로 묘사한 ‘인류가 주로 매우 덩치 큰 소프트웨어 체계를 유지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는 세계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축제에 전시할 게임을 만들며 밤을 새기도 했다. 어쩌다 상경대로 진학했지만 취업을 앞둔 시점까지도 딱히 할 줄 알거나 하고 싶은 다른 일도 없었다. ‘앞으로 50년’을 읽고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취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책에서 부정적으로 표현한 개발자가 더욱 많이 필요해질 미래에 오히려 기대를 걸었다.
2026년은 ‘앞으로 50년’이 출간된 뒤 24년이 된 해이다. 내 기대는 어긋났다. 확률적 예측에 기반한 거대언어모델(LLM)을 탑재한 AI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내가 속한 현장에서는 2025년부터 AI가 신입개발자처럼 코드를 직접 고치기 시작했다. 2026년의 사람은 AI들끼리 협업하는 팀의 관리자가 되었다. AI 에이전트들 사이에도 자연어로 소통하는 형태는 ‘통계적 표면 결합’의 예언을 실현하고 있다.
사람의 역할과 가치는 AI에 의해 재정의되고 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쌓아온 프로그래밍 역량의 대부분을 누구나 월 몇만 원에 AI 상품을 구독함으로써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직업인으로서의 나의 존재 가치에 도전을 받는 느낌이다. 다시 대학 4학년 때처럼 새 사람이 되자는 다짐 속에 살고 있다. 이번 고비를 넘기면 안정된 단계가 온다는 환상은 매번 깨어졌기에 명확한 미래를 이제 기대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4학년처럼 살아야할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 학번은 유독 과도기의 최전선에 함께 서 있던 때가 많았다. 1996년 11월의 불수능처럼 ‘하필이면 나 때 이런 일이…‘라는 원망도 들던 일에는 위안을 나누어 왔다. 삐삐, 시티폰, PCS, 날적이, 나우누리, 싸이월드, 스타크래프트 등 매체 기술은 바뀌었어도 공감대는 쌓인 시간만큼 단단해졌다. 1년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라도, 지금이 4학년 때와 다른 점은 격변 속에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AI가 ‘확률적 연결’로 사람의 기능적 능력을 압도하는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정서적 연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여 년 후에도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기대만은 빗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