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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Thu, Aug 7, 2025

독서 감상문

감상문 요약

  1. 이 책에서는 알파고 이후의 바둑계처럼 모든 분야에서 AI로 인해 사람이 추구하던 가치가 재정의되고 전문가의 권위는 약해져 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2. 회사에서도 일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AI와 연결되고 인사 평가에도 AI가 영향을 미치는 단계까지 나아갈 것으로 저는 예상합니다.
  3.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미래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AI의 판단을 더욱 거부하기 어려운 환경으로도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가치 판단도 미리 필요합니다.
  4. AI가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지는 시대에 사람의 핵심가치는 스스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가는 서사를 담아 정보와 판단을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먼저 온 미래’는 많은 분들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싶은 책입니다. 회사에서도 이 책을 53분께 나누어드렸습니다.

저에게 이 책이 왜 그렇게 감명 깊었는지를 전달하고자 감상과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책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 주변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측도 담아보았습니다. 예측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상상이 책 저자의 의도에 부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간중간 인용한 책의 페이지 번호는 종이책 기준입니다.)

나의 역량은 앞으로도 가치가 있을까?

이 책은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가 겪은 변화를 깊게 취재하고 통찰합니다.

바둑과 회사 업무는 많이 달라서 바둑계에서 바로 영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할 분도 계실 듯합니다. 바둑돌들이 놓인 위치라는 입력값과 착수점이라는 출력값이 우리가 대하는 업무에 비하면 단순해 보입니다. AI 업무 도구의 한계가 아직은 있기에 바둑계와 같은 큰 충격이 하루아침에 닥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자의 다음 의견에 근본적으로 동의합니다.

(p25)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것. 그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인공지능은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와는 다르다.

만화 ‘미생’에서 그랫듯, 회사의 일을 은유하는 대상으로도 바둑은 좋은 소재입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하는 소통과 결정도 바둑판 위의 돌처럼 일종의 입출력값입니다. 대형언어모델(LLM)은 우리의 언어를 바둑판처럼 구조화된 벡터 공간으로 변환하여 연산합니다. 이미 우리가 회사 생활에서 하는 표현과 결정은 바둑처럼 AI의 출력값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무에서 멀어진 관리자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기술과 관련된 판단을 할 때 LLM 서비스의 분석에 크게 의존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AI가 요약한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은 실제 회의에 참석한 사람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책에는 알파고 대국 당시 프로 기사들이 받은 충격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뉴스로도 접했던 사실이였지만, 아래 단락을 통해 그들의 심경을 더 깊이 상상해 보게되었습니다.

(책의 p39 ~ p42)

(김효성 3단) “대국이 있는 날마다 끝나고 술을 마셨어요. 뭔가 허탈하고, 공허하고,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들고….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믿고 있었던 수들이 틀렸다는 얘기잖아요.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공황 상태 비슷하게…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 송태곤 9단) “2주 정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면서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잠도 거의 못 잤어요”

(이다혜 5단) “집에서 중계를 보다가 멘탈이 나가서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이게 현실인가? 전화를 한번 해봐야겠어’ 하고 동료 기사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너무 충격적이고 슬프다, 이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IT 업계는 바둑계에 비해 AI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에 체감하는 AI 도구의 발전 속도는 그 여유를 앗아갈 만큼 놀랍습니다. 세종대왕이 맥북을 던졌다고 대답하던 과거의 LLM과는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AI코딩 도구로 Cursor가 GitHub Copilot보다 뛰어나다는 소문이 들리다가 불과 한두달 사이에 Claude Code가 이를 훨씬 뛰어 넘어서 왠만한 사람 개발자보다 더 낫다는 평가도 들립니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Qwen3-coder가 Claude Code급이라는 평판도 있습니다. 이 책을 작년에 읽었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고민해보자’라는 정도로 저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간의 충격이 아니기에 개인과 조직별로 시대에 받아들이는 편차가 커질 수도 있다는 점도 위기 요소입니다.

고도화된 AI는 기존의 ‘훈련된 전문가가 하던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재정의하고 가치의 기준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직 AI가 사람보다 못하는 일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단계에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발전의 속도를 볼 때 내년의 수준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아는 기획자 한 분은 이 책을 보면서 중간 중간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자기 분야에 애정과 전문성이 깊었던 분일수록 노력해서 쌓은 역량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을 때의 허망함과 자존감 하락이 클 것입니다. “?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은 신입사원도 할수 있는 일이지 않나요?“라는 말을 회사 동료분에게 들었다고 상상해 보시면 공감이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의 다음 문장은 많은 여운이 남습니다.

(p187)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되고,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면 된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p223) 인공지능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가치를 없애버린다.

회사는 어떻게 변해갈까?

바둑계에서 얻은 영감으로 제 주변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해봤습니다. 회사는 앞으로 점점 ‘AI와 함께 일하는 공간’으로 변해갑니다. 대용량 GPU가 동원된 AI모델이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는 온라인 저장소에 사람이 작업하는 산출물이 위치하게 됩니다. 개인 PC에서 폴더 정리를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하던 미덕은 이제 가치절하될 듯합니다.또는 그 PC 폴더 조차도 온라인, AI와 연결됩니다.

신규 입사자가 적응을 하기 어려운 회사는 AI도 함께 일하기 어려운 회사입니다. 특정 회사만의 용어나 제도, 체계화되지 않은 업무 처리 방식은 AI에게도 장벽이 되어서 앞으로는 더 큰 약점이 됩니다. 그러한 조직 내부의 특화된 정보나 암묵지들은 AI가 학습하기 쉬운 형태로 바뀌도록 요구받을 것 입니다.

(p198) 사실 현대 조직들은 몇몇 구성원이 가진 암묵지를 파악해서 다른 구성원에게 전파하려고 엄청 애를 쓰며, 이것이 이른바 ‘지식경영’의 핵심이다.

(p204)그런데 딥러닝 기법을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인간 전문가들보다 더 풍성하고 정확한 암묵지를 지니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일에 대한 내부 데이터에 AI가 접근할 수 있게되면 회사 내부의 맥락을 고려한 판단도 AI가 잘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AI에게 하는 질문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리포트를 써줘’에서 ‘이 프로젝트의 위기 요소는 무엇인가?‘로 옮겨 가게됩니다.

접근 가능한 내부 데이터가 넓어질수록 ‘검색’이나 ‘조사’가 넘어선, 논쟁이 될만한 ‘민감한 판단’에 AI가 기여하는 비중이 높아집니다. 2024년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 스트라이존 판단은 ABS라는 AI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고질적인 심판판정 논란을 없앴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재판에 대한 뉴스 기사에는 AI 판사를 도입하자는 댓글이 자주 보입니다. 야구의 ABS와 같은 기대가 보입니다. 책에서도 관련된 언급이 있습니다.

(p219)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판사가 AI 판결 도우미의 제안과 다른 판결을 내리면 어떤 논란이 벌어질까? 그때 그의 판결문은 얼마나 권위가 있을까?

사람이 최종적으로 하는 판단 과정에 AI 의존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AI가 판단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직은 과장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전문가의 권위가 점점 내려갈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책의 아래 단락이 공감되었습니다.

(p197) 내가 운전을 할 때 늘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를 따라간다면, 나는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는 걸까, 내비게이션의 명령을 받는 걸까?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를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시간과 연료를 그만큼 낭비하게 된다면 그때 나의 상황을 ‘내비게이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처벌을 받는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까? 만약 내 차 조수석과 뒷좌석에 동행인들이 있고, 그들이 당연히 내가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대로 운전하리라 예상한다면, 그때 내게 내비게이션의 제안을 따르지 않을 자유는 얼마나 있는 걸까?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매번 인공지능의 제안을 충실히 따른다면, 내가 속한 조직과 사회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걸까?

바둑계에서는 AI 시대 이후로 고수의 권위가 이전 같지 않습니다. 한수 한수가 승률에 기여하는 정도로 AI에 의해 평가되기에 중계진은 최고수가 놓은 수라도 ‘좋지 않은 수네요’라는 해설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관련된 프로야구에서도 AI 판정시스템을 도입을 한 후에 스타나 고참 선수들이 암묵적으로 보던 이득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IT 업계의 예를 들면 개발자에게 ‘코드 가독성’은 늘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사람마다 판단 기준이 다를 수도 있어서 토론 시간이 많이 소모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호했던 ‘가독성’의 기준도 앞으로도는 AI가 정하면 됩니다. 혹시나 특정 사람이 보기에 가독성이 좋지 않더라도 가장 빠르게 코드를 고칠 수 있는 AI에게 더 친화적인 코드라고하면 시니어 개발자라도 반론이 여지가 적어집니다. 앞으로의 신입사원은 코드 리뷰에서 20년차 선배와 AI의 의견이 갈렸을 때, 인간 관계 때문에 선배의 의견을 겉으로는 따르더라도 진심으로 동의할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바둑계가 이런 상황을 먼저 겪었습니다.

(p206, 이다혜 5단) 저도 변호사 한 명을 몇 년 동안 가르쳤는데, 그분이 알파고 이후에 ‘더 이상 바둑을 프로기사에게 배워야 할 이유를 못 찾겠어요’라면서 그만두셨어요. 바둑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그룹 레슨도 받고 개인 과외도 받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알파고 이전까지는 바둑 사범들을 신처럼 생각했는데 그런 환상이 깨졌대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아래 요소를 결합했을때, 앞으로 AI의 판단이 많은 영향을 미칠 의사결정이 어떤 것이 있을지 한번 상상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 회사 내의 업무 연관 데이터를 AI가 다 접근 가능함
  • 논란의 여지가 많을 만한 의사 결정
  • 기존의 권위가 중요하지 않음

저는 바로 ‘인사 평가’가 떠올랐습니다. 조직장은 아래와 같은 프롬프트를 AI에게 평가시즌 때마다 던지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아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별 평가를 하고 등급을 결정하고 피드백 의견을 써줘. 1) 연초의 개인 목표 2) 연말의 성과 기술 3)그동안 작성한 업무 산물출의 양과 질적 수준, 난이도 4) 동료들의 평판”

그리고 그 결과를 구성원에게 전달하고 “저는 선입견 없이 판단했고, AI도 같은 판단이이였어요. ?님과 친해서 안타깝지만 공정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네요.“라고 이야기할수 있게 됩니다.

HR 담당자는 임원 평가를 위해 아래와 같은 프롬프트를 활용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 A. 우리 회사 임원들의 업무 분장, 보상, 현재 하는 일을 고려하고, 다른 회사와도 비교했을 때 적절한 임원의 수는 얼마일까?
  • B. A에서 나온 수준대로 임원 수를 줄이려면 어떤 정량적 평가 기준이 필요할까?
  • C. B의 기준대로 올해 임원들을 평가하고, 재계약대상자를 추천해줘.

물론 인사 평가에서도 앞으로도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하겠지만, ‘공정성’이라는 명분으로 AI의 의견을 수용하는 비중이 커져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먼저 온 미래’에서는 인간 경영자도 ‘완전 AI 경영’이라는 선택지와 비교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p218) 당신이 이사회 멤버라면, AI 경영 도우미의 제안을 따르지 않는 인간 최고경영자를 얼마나 믿고 지지하겠는가? 다른 주주들은 어떨까? 직원들은? 인간 최고경영자보다 인공지능을 신뢰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경영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학생들을 더 정직하게 대하게 된 바둑 선생님들처럼, 인간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결정이 왜 인공지능보다 나은 판단인지 근거를 대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인간 최고경영자의 카리스마는 줄어든다. 그리고 시장에 언제나 ‘완전 AI 경영’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한, 인간 최고경영자의 최고 연봉도 지금처럼 높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바둑계가 겪은 것처럼,회사 안에서도 AI로 인해 개인의 역량과 존재 가치가 ‘통념, 사회적 관계에 의한 예우나 보정 없이’ 재평가되리라 예상합니다.

AI와 첨단 물리적 기술이 결합한다면 어떤 미래가 올까?

조금 더 먼 미래를 상상해보았습니다.

AI가 공신력 있는 집단 지성의 대체제로 간주되면서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 지성도 권위를 더 잃어가고 AI에 더 의존합니다. 결정자가 AI를 이용해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실무자는 미리부터 AI의 검사를 받고 표현과 보고를 준비합니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수익이 양극화되고, 냉정한 평가가 일상화되면 매일의 회사 생활이 면접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공대생이 단순 4칙 연산도 공학용 계산기를 쓰듯이, 사소한 표현도 AI의 검증을 맞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프로 바둑의 한수 한수가 승률기여도로 평가받는 것처럼 의사 소통 표현 하나하나를 AI가 실시간 평가를 해주는 시스템을 스스로 원하게 됩니다. ‘구글 글래스’와 같이 몸에 착용하고 AI의 눈과 귀가 되는 장비가 널리 보급되면 AI가 실시간으로 대화 코칭을 해주는 앱이 인기를 끌만도 합니다. 2025년에는 AI의 도움으로 빅테크의 면접을 합격한 학생은 부정행위로 징계를 받았지만, 미래에는 실시간 AI 코칭 도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열등한 존재가 됩니다. 거의 모든 인간 활동에 AI가 관여한다면 더 늘어난 전기 사용량을 지구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기도합니다.

표현과 결정의 예시나 선택지를 AI가 제시하고 여러 가치를 고려해서 인간이 최종 선택을 한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반문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의 사고력이 퇴화할 것이란 점도 변수입니다. 스마트폰 시대 이후로 사람들은 전화 번호를 외우지 않습니다. 숏폼 시대에 사람들은 지루함을 더 못견딥니다.AI의 수준이 올라갈 수록 생각을 덜 하는 습관은 급격하게 번져나갑니다. 사고가 약해지면 AI가 제안하지 않은 방안은 결정의 선택지에 조차 올라오지도 않게 됩니다. 의사결정에서 인간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가속도가 더 붙습니다.

그런 미래가 온다면 인간을 ‘AI의 입출력 장치’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핵심 의사 소통과 결정은 AI가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사람은 물리 세계의 데이터 연결,수집과 보정을 하는 역할로 의미 부여됩니다. 건물이 세워지고 산이 깍이는 의사 결정이 AI와 온라인에서 실질적으로 일어난다면, 현실 물리 세계는 인간이라는 3차원 입출력 장치가 연결된 하나의 매체라는 철학적인 해석을 할만도 합니다. 과거에는 필름이나 현상된 사진을 원본이라고 생각했다면, 요즘은 디지털 이미지 데이터를 원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해집니다. 알파고 바둑 대전으로 은유하자면, 물리적 바둑판이 현실세계이고, 알파고의 출력값을 바둑판에 전달했던 ‘아자황’이 미래 인간의 역할입니다.

웨어러블 기기가 영상/음성 합성, 추천 알고리즘 등 현재 AI기술이 결합해도 현실 물리 세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다른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공통 현실’처럼, 보편적/물리적 현실을 구분하는 새로운 용어가 앞으로 필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p322) 우리는 현실감을 잃어버린 뒤에야, 기술로 인해 객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지고 증강현실 기기 이용자들이 모두 주관적 현실 속에서 사는 때가 되어서야 현실감이 어떤 가치였는지 이해하게 된다. 2020년대는 ‘공통 현실’이라는 게 존재한 마지막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발전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 Computer Interface)과 AI가 결합된다면 다른 차원의 현실이 생깁니다. 영화 ‘매트릭스’와 같이 사람이 구별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 안에서, 전자 두뇌와 생체 두뇌가 상호 작용하게 됩니다. 지금의 흐름을 보면 생체 두뇌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생체 두뇌’는 ‘전자 두뇌’의 최적화를 위한 연구 소재로 가치가 부여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생물인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 구조를 활용한 자율주행 시스템은 기존의 합성곱신경망(CNN) 구조보다 63배나 단순화할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현재의 BCI 기술은 실험 단계이고 ‘매트릭스’와 같은 수준이 되려면 갈 길이 아주 멉니다. 앨런 머스크는 BCI용 칩을 두뇌에 이식하는 과정을 라식 수술처럼 간단하게 만들겠다고 합니다. 만약 그의 장담이 실현되고 그 수술을 받은 사람이 아닌 사람의 몇배의 연봉을 받는 시기가 온다면칩 이식 수술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렵게 됩니다. 이런 상상은 SF스럽지만 인간을 바둑으로 이기는 AI도 2016년 전에는 SF급의 상상으로 치부되었기에 기술적으로는 도래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에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인간 정신을 디지털로 복제하는 ‘마인드 업로딩’은 근세기 내에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지만, 그 전에 BCI 기술로도 ‘인간’의 정의 자체가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그 세계가 디스토피아일지, 아니면 유토피아일지도 판단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온 미래’의 장강명 작가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가 있었기에 상상 속의 디스토피아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바꿀 미래에 대해서도 멀리 넓게 상상하고 진지하게 가치 판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새로운 사상이 필요한 변화라는 생각이 이 책의 아래 문구를 읽고서도 들었습니다.

(p304) 기술자들은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쓰는 사람이 그 용도를 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들은 틀렸다. 기술은 하나의 사상이다. 흔히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어가면 조리 도구가 되고,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무기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칼은 오히려 매우 예외적인 기술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지막 단락의 제목을 ‘어떻게 살아야할까?‘로 먼저 지었지만, 정리된 결론을 쓸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AI로 인한 사회,가치, 사상의 변화라는 큰 담론 앞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순응’외에는 더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 책을 심각하게 읽은 이유는, 저의 장점이라 여겼던 역량은 앞으로 AI가 훨씬 더 잘할 일이라는 것을 깨닮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정보를 연결해서 잘 정리한다는 칭찬을 종종 들었는데 현 시점에도 소재만 다 주어진다면 AI가 저보다 더 나은 글을 씁니다. 앞으로 제가 쓴 글을 직접 끝까지 읽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고, 저의 글도 열화되어 AI가 쓸 보편적이고 무난한 글에 녹여질 데이터로 의미가 매겨질 것입니다.

그런데 AI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기에 강조해서 표현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AI가 정리한 균형 있는 글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도 다 비슷해지는 방향으로 수렴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현재 특정 분야에 특화된 AI는 누가 스타 야구 선수이고, 누가 바둑 최고수인지 모르기에 본질에 충실한 판단을 내릴수 있다면, 저는 범용 AI보다 모르는 것이 많기에 AI가 가질 수 없는 관점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책을 읽고 제 생각을 보태서 쓴 글이 읽는 분에게 다른 독자적인 생각을 북돋는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저에게는 사고력이 약해지지 않기 위한 훈련이 된다고 의미부여해봤습니다. ‘쓴 글의 원문을 끝까지 읽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면, 제가 AI 시대에도 존재할 가치가 있을 듯합니다.

감상문을 쓰기 위해 책에서 밑줄 친 내용을 다시 읽다보니 아래 단락이 처음보다 눈에 띄었습니다.

(p123, 김지석 9단) “… 예를 들어 AI가 이길 확률이 53퍼센트인 수와 이길 확률이 50퍼센트인 수를 추천했다고 쳐요. 그런데 제가 53퍼센트짜리 수에 대해서는 모양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50퍼센트짜리 수에 대해서는 그래도 비교적 이해를 하고 있다면 ‘이해도’ 같은 변수를 넣어서 값을 보정해야 할 것 같아요. 어차피 바둑은 제가 둬야 하는 거잖아요. AI가 53퍼센트가 아니라 60퍼센트, 70퍼센트짜리 수를 추천한다고 한들 제가 그 모양을 이해하지 못하면 차라리 50퍼센트짜리가 더 승률 기대치가 높지 않을까 싶어요.”

(p248) 인간 기사들이 만들어 내는 서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라면, ‘인간의 바둑’은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중심에 모으고 불필요한 요소는 줄이거나 빼는 방향으로 재구성된다. ‘인간의 문학’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탁월함이라는 가치는 결코 중심 요소가 아니며 아주 낮은 수준으로 요구된다. 그러면 바둑이건 문학이건, 참여하는 개인이 노력해야 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탁월함이 아니라 스토리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AI의 탁월함이 사람을 넘어선 시대에는 스스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가는 서사를 담아 정보와 판단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존감을 지켜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되뇌이며 감상문을 마칩니다.

(p340)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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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책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8032297
  • 전자책 : https://play.google.com/store/books/details?id=xC5oEQAAQBAJ

책에 있는 내용 외에도 이 글에서 짧게 언급된 다른 주제들이 더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기사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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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봇 심판이 만든 ‘공정 야구’(중앙 SUNDAY, 2024-09-21)
    • 전격 도입 ABS, 고참 타자들은 고전하고 젊은 타자는 덕봤다(조선일보, 2024-12-12)
  • AI를 몰래 활용한 면접에 대한 징계
    • 아마존도 ‘극대노’한 한인 학생 정체…“빅테크 다 뚫었다”( MBC AMERICA NEWS,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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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투자에 바쁜 실리콘밸리(주간조선 2020-09-08)
    • 뉴럴링크 “2031년에 연간 2만 명에 칩 이식”(YTN, 202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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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인드 업로딩
    • (책) 마인드 업로딩은 가능한가- 한국 스켑틱 Skeptic 2016 Vol.7

종교는 없지만 작가님이 하시는 기도는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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