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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 Sat, Apr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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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내 취향에 맞지는 않았다. 난 줄거리의 현실성, 설득력, 개연성을 중요시하는데 이 드라마에서 납득이 잘 안되는 설정과 장면이 보일 때마다 몰입도가 떨어졌었다.

우선 이 드라마의 큰 사건을 이끌어가는 장치인 ‘도청앱’이 그렇게까지 안 들킬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녹음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하루종일 전송한다면 배터리 소모량, 네트워크 사용량이 티가 나게 많이 늘어날 것 같다.

지안의 친구 기범이 게임 폐인인데 컴퓨터를 잘해서 해킹을 한다는 설정도 안일해 보였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으면 컴퓨터로 하는건 다 잘하게 되는걸로 작가분이 생각한 건가 싶기도하다. 하기야 내 친구들도 프로그래머인 나에게 Windows와 Excel에 대한 걸 많이 물어보는데 내 컴퓨터에는 그 프로그램들이 깔려있지도 않다.

회사 감사실로 가는 이메일을 중간에 해킹해서 지웠다는 대사도 있었다. 이게 더 그럴듯하려면 지안이 기범에게 어떻게 회사 네트워크 안으로 접속하는 권한을 뚫어주는지나 감사실 직원 컴퓨터에 사내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이 걸리지 않는 백도어 프로그램을 까는 장면이라도 있어야했다. CCTV가 그렇게 많은 분위기의 회사라면 흔적없이 그런 일을 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광일이 30개 이상의 USB 메모리로 녹음파일을 전달하는 장면도 의아하다. MP3 파일은 CD수준의 음질이라도 용량이 1분에 1MB 정도라고하니 1년치를 녹음해도 1MB * 60 * 24 * 365 = 525,500 MB, 525.6GB 밖에 안된다. 테라바이트급 USB 메모리 1개가 더 쌀 것 같은데, 번거롭게 30여개에 나눠서 담을 이유가 적어보인다.

그밖에 동훈이 형의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 그 건물주의 약점도 과도한 우연으로 느껴졌다.

인물과 배경 설정에서도 동훈이 많이 불쌍한 사람처럼 나오는데 생활을 보면 별로 그렇게 안 보인다. 회사에서 끌어주는 상사도 있지, 관리할 직원은 3명밖에 안되면서 나름 애정이 있는 실무도 하고 있다. 상무 진급하니 주변에서 환호해줄 정도로 대부분 회사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 성실한 죄수처럼 회사를 꾸역꾸역 간다고 표현되는데 공감이 안 갔다. 퇴근하면 맨날 형제들이나 동네 친구들하고 술 마시고, 주말에는 애도 안보고 조기 축구도 마음껏간다. 이 설정만 보면 40대 중반 남성의 환타지에 가깝다고도 할만하다.

그럼에도 난 이 드라마가 어떤 면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이해가 가고, 보면서 느낀 몇몇 감정들을 꽤 오랫동안 종종 떠올리고 있다.

사람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힘든 큰 상처가 다들 있을건데, 쉽게 털어놓을수 없으니 자기만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더 외로워진다. 사연은 다를지라도 지안이나 동훈의 극단적인 비극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준다.

여러 번에 걸쳐 지안은 동훈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지체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걸 판별하는데 복잡한 연산이 필요한 건 아니다. 어떤걸 받기를 기대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따져보기에 그런 표현을 둘러산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감정 표현들이 과거에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그런 대사를 듣는 사람들은 많이 떠올렸을법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떤 상처 때문에 스스로를 원망하고 다른 사람과도 거리를 느꼈지만, 당신은 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말을 작가가 하고 싶어 했다고 난 느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기억하는 사람들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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