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와 적성 - Sat, Jan 22, 2022
평가철이 되면 ‘난 역시 관리자 체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관리자가 적성에 맞을지 처음 생각해본건 군대 시절이였다.
내 군대 생활은 회사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그때 일하던 ‘부서'에서는 ‘선임병장'이라는 관리자 직책이 있었다. 직책이름인 ‘선임병장'은 앞에 ‘최'가 생략된 단어로 이해될만도 했다. 최고참이 되면 담당하던 실무는 하지 않고 후임병들이 한 일을 취합해서 보고하고 간부(장교/하사관)으로부터 업무를 받아서 분배만 한다. 정해진 업무량이 적고 일이 생겨도 후임병을 시키면 되는 일이라 최고참이 되면 의례히 그 역할을 다들 했었다.
난 그때 관례를 깨고 나를 건너뛰고 다음번 순서의 후임에게 ‘선임병장’ 역할을 맡기자는 의견을 내고 간부들에게 관철시켰다. 내가 담당하는 ‘경리’ 업무가 돈을 다루기에 민감하고 제대 전까지 다른 업무보다는 인수인계를 정밀해야 안전하다는 명문을 내세웠다. 사실은 말년에 간부들하고 접점이 더 적기를 바랬고, 내 후임인 ‘선임병장'이 나를 특별히 갈굴리도 없기 때문에 더 마음편한 말년을 보내기 위한 전략이기는했다.
그렇지만 그런 결정의 내면에는 ‘난 다른 사람한테 일만 시키고 실무는 안 하는 관리자가 적성에 맞지 않어’ 라는 정서가 있었다. 당시 하던 실무에 재미도 느끼고 애정도 있었다. 수작업을 Excel 매크로로 자동화 하는 등 일을 개선하는데에서 성취감을 많이 느꼈었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확실했고 거기에서 오는 뿌듯함이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엑셀 매크로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고 후임병과 나와 다른 사람의 이득이 상충된다고 느껴지는 순간의 갈등도 피하고 싶었다.
그 이후 본격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내 타고난 적성과 본성은 관리자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프로그래밍은 재미있었고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왔지만 사람들 사이의 문제는 어렵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더 경력이 쌓이다보니 관리자와 아닌 사람이 명확히 나누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기 관리는 해야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야 협업을 할 수 있으니 모든 사람은 ‘관리’ 를 하고 있다. 그래도 관리의 비중이 많이 높아지는 직무는 매력적이지 않는 생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찌어찌하다보니 회사 시스템에서도 ‘관리직’ 으로 표시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프로그래밍이 가장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관리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는 생각하게 되었다. 나보다 더 실무능력이 뛰어난 동료들 여럿으로 부터 배우는 점도 많고 그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은 보람차다. 그래도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면담, 1대1일 회의를 즐겁게 할때도 많다.
그러나 평가시즌이 되면 내가 평가를 할 자격이 있는건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결정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회사에서 저성과자로 통보 받은 적이 있는 친한 친구가 있어서 그런 결정이 얼마나 사람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지 알고 있다. 그 친구를 생각하니 부정적인 평가등급을 전달받는 분들의 고통이 전파를 통해 나에게 수신되는 느낌도 들었다. 좋은 사람이 되는것이 목표는 아니고 누군가에는 원망받는 일을 때로는 감수해야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내 결정이 합당한지, 내가 잘 알고 그런 평가를 하는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기에 마음이 무겁다.
관리자가 적성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는 일이니 일단 하는 동안에는 많이 노력할 수밖에 없겠다. 이 기억을 잊지않고 평소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지만, 앞으로 몇년동안은 마음이 시릴 계절로 다가올 것 같다. 그럼에도 긴 인생에 비하면 짧은, 회사에서 관리자 일을 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관리자의 수명과 단계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실무의 감도 떨어지면 세부적인 의사결정은 직접하지 않고 큰 ‘투자’ 의사 결정을 하는 역할로 옮겨가야 자연스럽다. 과거 경험을 넘어서는 배움이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을 세우고 있어야겠다. 그럴 때가 되면 더 큰 단위의 의사결정을 하는 역할보다는 다시 실무로 돌아가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