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도 소주 - Sat, Jun 1, 2013

25도 두꺼비를 재회하다
마트에서 우연히 대학시절 마시던 25도 진로 소주를 발견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몇 병을 사두었다가 친구의 집들이 때 나눠마셨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마셨던 술이라 그 맛이 기억 날리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시 21도였던 참이슬에 비해 얼마나 독한지 비교나 해보자는 느낌으로 첫잔을 마셨습니다.
거짓말 같이 대학생 시절의 이런저런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술 마시다 자주 토하던 친구의 얼굴, 잘 곳이 없으면 단체로 갔던 신촌의 미림여관, 뭔가 방황스러웠던 그때의 기분. 술맛이 머리 속 영사기를 돌려주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에서 밀레의 만종을 떠올리게 하는 와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때 두꺼비 소주를 먹고나니 그 만화의 그 장면이 온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재생된 장면이 만종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긴합니다.
만화 ‘식객’의 ‘국민주’ 편
허영만님의 만화 ‘식객’에서도 소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99화 ‘국민주’편입니다. 일본 만화가가 소주를 취재하러 우리나라에 왔는데, 주인공 성찬은 지방마다 다양한 소주가 있지만 그 맛의 결론은 하나라는 말을 합니다. 그게 무엇일까 고민을 하던 만화가는 새벽에 청소원 아저씨와 그의 아들이 소주를 나누는 것을 보고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만화가는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소주를 내놓으면서, 마시고는 ‘카아~‘를 따라하라고 시킵니다.
소주의 술말
좋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달달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후회하기도 하고, 그리워지기도 하고.
우리의 일상처럼 웃는듯, 찌푸린듯한 여러 맛이 소주에는 얽혀있습니다.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캬~‘로 표현할 뿐입니다.
제가 지은 소주의 술말은 ‘일상’입니다. 그래서 ‘소주 한잔 같이 하자’는 말은 일상을 나누고 공감하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맥주가 밝은 ‘박수’라면 소주는 ‘위안의 말’과도 어울립니다. 일상에 닳은 상처가 쓰라리고 씁쓸한 한숨이 가슴을 파는 날이라면 소주가 그 일상보다 조금은 달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너무 달착지근한 맛은 얄팍한 위안이 될 것만 같습니다.
어느덧 시중에서 파는 소주는 16도까지 도수가 내려갔고, 21도짜리가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쓴 맛이 없어서 ‘캬~‘가 나오지 않는 소주로는 일상을 함축하기에 부족합니다. 밍밍해지고 맥주에 타서 먹는 술로 전락한 지금 소주의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시중에 더 다양한 소주가 유통되면 좋겠습니다. 일상의 쓴 맛을 되뇌이고 싶은 날은 25도 소주를 가게에서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날이 돌아왔으면 합니다.